헤키간지 절(碧巌寺)
헤키간지 절(푸른 절벽의 절을 뜻함)은 조동종의 사원으로, 12세기에 쓰인 중국 선종의 어록 『벽암록』과 연관 지어 이러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이 어록은 기쿠치에 지적 생활을 꽃피웠다고 알려져 있으며, 기쿠치 가문의 20대 영주였던 기쿠치 다메쿠니(1430-1488)의 인생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그는 지역 문화에 힘을 쏟는 지지자였기에 무사나 마을 주민이 학문과 정신적인 부분을 탐구하도록 장려했습니다.
다메쿠니는 36세에 영주의 자리에서 내려와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와이후에서 떨어진 언덕 기슭에 있는 암자에 칩거했습니다. 거기서 다메쿠니는 당시 일본 선학자 사이에서 특히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공안(이야기, 문답, 질문) 어록인 『벽암록』의 연구에 전념했습니다. 다메쿠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가 속세를 떠나 지내던 곳은 헤키간지 절이라고 불리는 선종 사원이 되었습니다.
경내에는 다메쿠니 시대에 유행한 양식으로 1996년에 재건된 연못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정원이 있습니다. 또한 다메쿠니의 두 번째 묘인 공양탑이 있습니다. 다메쿠니의 본 묘는 기쿠치시 북부의 교쿠쇼지 절에 있습니다.
※기쿠치 일족(菊池一族とは)
※다른 문화재에 설명판도 다국어화 되어 있습니다.(他の文化財説明板も多言語化しています。)
碧厳寺
亀尾城の真下に位置し、開山は如拙伯功(にょせつはっこう)和尚、「神龍山碧巌寺」と称されます。地元区が管理した時期もありましたが現在は住職により整えられており、宗旨は禅宗曹洞派です。
菊池20代為邦は、文正元年(1466)37歳で家督を嫡子重朝に譲り、剃髪して僧となり、この地で隠棲し日夜「碧巌集」の研究に励んだとされ、このことが碧巌寺の名の由来となっています。
為邦は長享2年(1488)59歳で他界し玉祥寺に葬られましたが、本寺の境内隅にもその分墓(遺髪塔)があります。
菊池一族の勢力が衰えてくると、他宗の僧が住むなど荒廃した時期もありましたが、加藤清正の時代に京都東福寺より清韓和尚が招かれ、再興されました。現在寺に残る扁額は、清韓の筆によるとされます。
平成8年現住職により庭園も修復され、室町風といわれる見事な景観を見せて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