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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菊池持朝の墓

2025年03月05日

기쿠치 모치토모의 묘

 기쿠치 가문의 19대 영주인 기쿠치 모치토모(1409-1446)는 옛날에 적이었던 아시카가 쇼군가와의 관계를 개선한 유능한 외교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치토모가 영주가 된 1431년, 무가가 주도하는 아시카가 막부가 기쿠치 가문이 지지하는 남조를 복종시켜, 조정을 둘로 나누어 무가 계급을 분열시킨 내분에 종지부를 찍고 난 후 약 40년이 경과했습니다. 기쿠치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과 군사력은 크게 낮아졌으나, 막부는 패전 이후 기쿠치 가문에 히고국(현재 구마모토현)의 수호직(지역의 치안을 유지하는 지방관. 현재 현의 지사와 같은 것)을 계속 맡겼습니다.


 규슈에서 기쿠치 가문은 무가인 오우치 가문, 오토모 가문과 대립했습니다. 오토모 가문의 후계자를 두고 싸움이 일어나자, 주도권을 빼앗긴 측이 기쿠치 가문에 가세했습니다. 아시카가 막부도 오토모 가문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에 기쿠치 모치토모는 막부와 거래를 했습니다. 그 거래란 막부는 기쿠치 가문의 주도로, 오토모 가문을 타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모치토모에게 오토모 가문이 지배하던 지쿠고국(현재 후쿠오카현 남부)의 수호직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모치토모의 계획은 성공했고, 1446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히고와 지쿠고 양국의 수호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반세기 후 오토모 가문은 기쿠치 가문을 쓰러뜨렸고, 기쿠치 가문의 선조 대대로 내려온 땅인 히고를 점령하여 복수했습니다. 기쿠치 모치토모의 묘는 고젠지 절 경내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쿠치 일족(菊池一族とは)

다른 문화재에 설명판도 다국어화 되어 있습니다.(他の文化財説明板も多言語化しています。)


菊池持朝の墓

 持朝は永享3年(1431)、父兼朝の隠居の後をうけて、19代肥後守となりました。将軍足利義政は筑後守護職を与えることを条件に、九州筑前に攻め入った中国の大内持世に協力し、豊後の大友持直と戦うよう要請しました。これにより肥後・筑後の守護として勢力を保持してきた持朝は、38歳の若さで死去しました。墓は菩提寺であった光善寺にあり、周囲には五輪塔が多く残さ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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