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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菊池則隆の墓

2025年03月05日

기쿠치 노리타카의 묘

 기쿠치 노리타카는 기쿠치 가문의 선조입니다. 그의 자세한 생애에 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점이 많으나, 규슈의 행정 중심지였던 다자이후(현재 후쿠오카현 중서부)에 부임한 고위 관리였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1070년, 노리타카는 현재의 기쿠치 지방에 도착하여 궁정이 소유하는 농경지 ‘장원’을 감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리타카는 기쿠치라는 성을 사용했고, 이후 기쿠치 강이라고 불리게 된 강가에 성을 구축하고,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인 와이후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기쿠치 지방은 외딴곳이었지만 벼농사가 왕성한 농업 지대였습니다. 노리타카는 이 비옥한 평야의 동부에 저택을 지어서 기쿠치 강의 교통을 지배하는 전략적인 입지를 확보했습니다. 강에서 시행되는 교역을 독점하고 주변 평야에서 재배된 농작물을 팔아서 기쿠치 가문은 번영했으며, 노리타카가 구축한 저택은 1300년대 후반까지 일족의 본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노리타카의 묘는 저택 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현재의 묘는 1818년에 만들어졌으며, 실제로 유골이 안치된 것이 아니라 공양탑으로 여겨집니다.


기쿠치 일족(菊池一族とは)

다른 문화재에 설명판도 다국어화 되어 있습니다.(他の文化財説明板も多言語化しています。)


菊池則隆の墓

 菊池初代則隆については、藤原後胤説や菊池土豪説などの諸説があります。大宰府の荘官としてこの地に赴任した則隆は、延久2年(1070)、深川に居館「北宮館」を構え、ここを本拠として肥後国一円に散在する所領を管理していたとされます。深川は菊池平野の東部に位置し、かつ菊池川舟運の発着地点でもありました。「北宮館」は土塁と堀壕で囲まれた広い屋敷を持つ館であったと思われます。後に守山城に移るまで、この居館を中心に営々として領内の開発に努め、さらに菊池氏歴代惣領が南朝方に味方した拠点でした。

 則隆は永保元年(1081)に死亡し、深川村上原に葬られたとされますが、その墓(五輪塔)は文化15年(1818)に造られ、明治・大正と3回の工事を経て、現在に至っています。墓の基壇には古墳の石材が利用され、古老の話では墓の下に朱塗りの石棺が埋まっているといわ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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