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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熊耳山正観寺

2025年03月05日

쇼칸지 절(正観寺)

 기쿠치시 중심부에 위치한 쇼칸지 절은 기쿠치 일족이 번영했던 1300년대부터 1400년대에 이르기까지 가문의 가장 중요한 종교 시설이었습니다. 이 절은 임제종 사원으로 기쿠치 다케미쓰(1319-1373)가 15대 영주로 부임한 직후인 1344년에, 다케미쓰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다케미쓰는 전쟁 중 가장 성공한 기쿠치 가문의 지도자이자 영향력 있는 개혁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케미쓰는 지도자로서의 권위 확립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쇼칸지 절을 세웠습니다. 이후, 기쿠치 가문이 이끄는 동맹이 규슈 전역을 지배하기까지 다케미쓰는 일족의 영토와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성 아래 마을인 와이후(현재의 기쿠치시 중심부)를 본거지로 두었던 다케미쓰의 개혁 중 하나가 와이후에 있는 다섯 개의 선종 사원을 일족의 보호 아래에 두는 ‘기쿠치 고잔’ 제도의 창설입니다. 이 사원들은 그 보답으로 기쿠치 가문을 섬기며 다양한 행정적, 종교적 임무를 다했습니다.


 쇼칸지 절은 고잔 중에서도 상위에 위치하는 특권적인 지위에 있었기에 다케미쓰와 그 후대의 기쿠치 가문 영주들의 지원 아래 서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원으로 성장했습니다. 1300년대 후반에는 경내에 14개의 건물이 들어섰고, 쇼칸지 절은 1400년대 후반까지 학문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기쿠치 다케미쓰는 쇼칸지 절에 묻혔습니다. 현재의 묘는 19세기에 복원한 것으로, 현재 절의 묘지가 있는 장소와는 반대 방향인 본당 근처에 만들었습니다.


기쿠치 일족(菊池一族とは)

다른 문화재에 설명판도 다국어화 되어 있습니다.(他の文化財説明板も多言語化しています。)


熊耳山正観寺

 元弘3年(1333)、12代武時が博多の鎮西探題を襲撃したとき、幼少の武光は博多の臨済宗聖福寺にかくまわれ、菊池へ無事に送り返されました。その恩義を忘れなかった武光が、同寺の大方元恢を招いて興国5年(1344)に建立した寺院です。元恢は京都建仁寺の開山栄西の法孫、鎌倉円覚寺の秀山元中の法嗣にあたり、同寺にある「洪釣堂」の額は元恢和尚の真筆と伝えられています。

 菊池武光は寺領66町を寄進し、菊池氏全盛の頃、境内には万松院など14坊や堂宇が建ち並び、宝徳3年(1451)、20代為邦の頃には全国十刹の一つに数えられ、代々碩学の高僧を輩出した西国屈指の大寺院でした。しかし、菊池氏の衰退とともに寺運も傾いてしまいました。

 元禄3年(1690)に細川綱利が寺領12石5斗を寄進し、寺の面目を保つことが出来ました。境内には正観公(武光)神道碑や武政、武澄らの墓があ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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