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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에 반코(渋江 晩香, 1832-1914)

갱신일:2017.01.21

시부에 반코(渋江 晩香, 1832-1914)

 

시부에 반코(渋江晩香)는, 돈단(涒灘)의 3남으로 이름을 기미오(公雄), 후에 기미키(公木)로 개명했습니다. 호방하고 활발한 성격의 형, 고코쿠(公穀)와는 대조적으로 온화하고 섬세한 성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격동의 메이지에 살았던 반코에게는 두 개의 모습이 있습니다. 시부에 가문 대대의 가업인 교육자로서 그리고 이 시대에 창건된 기쿠치 신사의 신관으로서 진력한 반코. 이번에는 그런 반코의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어려서부터 반코는 아버지 돈단(涒灘)으로부터 배웠지만, 14살 때 아버지를 여의자, 아버지의 제자였던 기노시타 바이리(木下梅里), 후에는 그의 형 이손(韡村)에게서 사사했습니다. 이손주쿠 학원(韡村塾)에 재학했던 25세 때 히고번(肥後藩) 가로(家老)의 집에 초청되어 이후 7년에 걸쳐 교육 담당을 맡았으며, 31세 때 번의 명으로 오쓰고(大津郷) 문예 사범이 되었습니다. 또한, 오즈(大津)에 시부에주쿠 학원(渋江塾)을 열고 시스이산보(紫翠山房)라 명명하여 교육에 힘썼습니다. 그 후 기쿠치에 돌아와 1873년, 사숙인 "손시도(遜志堂)"를 창건함. 1906년에 손시도가 폐쇄되기까지 43년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실로 1500명의 문하생 교육에 힘쓴 인생이었습니다.

"손시도"는 의욕이 있으면서도 중년까지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람과 낮에는 일하고 아침저녁의 빈 시간에 공부하고 싶은 사람 등, 공립학교가 등장하면서도 공부에 뜻을 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인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명성보다 세상과 사람을 위해 진력한 반코의 자세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상징됩니다. 59세 때 메이지 천황의 지코(侍講: 천황의 교육 담당)였던 모토다 나가자네(元田永孚)가 사망했을 때, 구마모토 출신으로 후에 총리대신이 된 기요우라 게이고(清浦奎吾)에 의해 다음의 지코로 반코가 추천된 것입니다. 그러나 반코는 더 없는 입신출세의 기회를, "호의는 고맙지만, 부덕한 자로 천황의 스승이 될 수는 없다"라며 거절했고, 평생을 고향의 교육과 기쿠치 신사의 신관으로서 바쳤습니다.

다음 회는 반코의 신관으로서의 면모를 살펴보겠습니다.

 

 渋江晩香肖像画



시부에 반코 초상화(와이후 이치반칸 소장)


문의

기쿠치시청 교육위원회 평생학습과 사회교육계
전화번호:0968-25-7232이 기사에 관한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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