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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야 일기의 석교
다리 가설은 일대 사업이며, 주민 생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근세, 히고(肥後: 구마모토의 옛 이름) 석공은 전국적으로도 수준 높았고, 기쿠치 시내에도 몇 개의 석교(石橋)가 남아 있습니다.
"시마야 일기" 7권째 "연감"에는, 1823년 12월 4일 나가야마바시 다리(永山橋)에서 행해진 "와타리조메(渡り初め:개통식)"에 관한 기술이 있습니다. "와타리조메"란, 다리를 낙성했을 때 행하는 식전으로, 고령의 부부나 부모・자손・손자 부부로 3대가 함께 사는 가족 등이 다리를 건너는 것이 보통입니다. 일기의 기술을 보면, 이마무라(今村)에서 "한 가족으로부터 부부 3쌍" 과 "아카호시무라(赤星村) 94세인 도쿠헤이"라는 장수한 분이 와타리조메를 한 것 같습니다.
다리가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는 의식이었으나, 그 보람도 없이 이 다리는 1829년 5월, 홍수로 유실됩니다. 현재 남아 있는 다리는 그 대신 1879년 130m 정도 상류에 가설된 것입니다. 현대와 달리 당시 다리는 홍수로 유실되는 등 유지가 힘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와타리조메" 외에도 "하시카타메"(橋堅メ: 다리를 지키는 의식인듯 함)에 관한 기술이 많으며, 나가야마바시 다리(永山橋)에서는 "가타메오도리 춤(堅メ踊り)", 후지타 가와하라바시 다리(藤田河原橋 또는, 相生橋)에서는 시바이코교(芝居興行:연극 흥행)를 했다고 합니다.
다리를 가설할 때는, 공사를 하는 목수, 석공 외에도 경비 모으기나 관리를 하는 관리의 존재도 불가결합니다. 현재, 나가야마바시 다리와 함께 구마모토현 지정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다테카도바시 다리(立門橋)에 관해, 일기에는 노즈 데나가(野津手永: 현재의 가가미마치) 석공과 함께 쇼야(庄屋) 등의 관리 명이 병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노력한 결과, 지금도 남아 있는 훌륭한 석교가 만들어졌습니다. 200년 전 일기에 쓰여진 기술이 현재의 다리 모습과 겹쳐, 당시의 생각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기쿠치 디지털 어카이브(https://da.library-kikuchi.jp/)에서는 "시마야 일기" 전편, 나가야마바시 다리・다테카도바시 다리의 사진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꼭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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