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쿠치 이야기 콘텐츠일람 보기

힐링의 고장 기쿠치시

액티브한 휴일을 보내는 데 안성맞춤! 관광 체험

명물 「스키스키돈 덮밥」 권하고 싶은 디저트도 다양하게 있어요! 먹거리

온천에서 디톡스(해독)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숙박

기쿠치의 최신 정보를 전달합니다! 정보

옛날의 구마모토를 느끼는 귀중한 시간을 만끽해 보세요. 배우기

앞 페이지로 돌아옴

기사의 상세

시부에 반코(渋江 晩香)

갱신일:2017.03.07

시부에 반코(渋江 晩香, 1832-1914)

 

 사숙인 "손시도(遜志堂) "를 창건하고 43년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1,500명의 문하생 교육에 힘쓴 반코(晩香)는 교육자 외에 기쿠치 신사 菊池神社 신관으로도 일했습니다.

 1872년, 40세 때 반코는 기쿠치 가문을 모시는 기쿠치 신사 창건 후 2대 신관이 되었습니다. 원래 시부에 가문은 대대로 덴치겐스이(天地元水) 신사의 신관이 가업이었다는 점과 선조인 紫陽(시요)와 松石(쇼세키)가 기쿠치 일족의 충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힘썼다는 점에서, 반코 자신도 이 발탁에 대해 기뻐했다고 합니다. 1878년, 기쿠치 신사가 특별 관폐사(別格官幣社: 국가를 위해 특별한 공이 큰 인물을 모시는 신사)로 승격하자, 반코는 네기(禰宜, 구지(宮司) 다음의 신관)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반코는 일본 역사와 관련된 큰 사건에 조우합니다. 시대는 마침 메이지 유신을 거쳐 메이지 헌법을 만들려고 하던 중. 반코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내명을 받고 몰래 정부의 요인이 찾아옵니다. 과거 기노시타주쿠(木下塾)에서 반코와 책상을 나란히 한 이노우에 고와시(井上毅)였습니다. 이노우에의 목적은 기쿠치 신사의 신위(霊代:또는 위패)로 신전 깊이 모시고 있던 기쿠치 13대 다케시게(武重)가 직접 쓴 "요리아이슈 나이단노고토 寄合衆内談の事" (菊池家憲: 기쿠치 가헌)를 열람하는 것. 반코는 주저하던 끝에 신의 뜻을 묻는 의식을 치른 후, 이를 이노우에에게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임무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간 이노우에는 메이지 헌법 공포 후, 반코에게 헌법 서류를 송부했다고 합니다.

 1908년, 76세의 반코는 기쿠치 신사 제4대 구지(宮司: 신관)로 승진합니다. 사실 반코 자신은 "기쿠치 신사 구지(宮司)에는 기쿠치 씨의 혈맥을 이은 사람이 적당하다"라며, 평생 네기(禰宜)로 지낼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코의 지혜와 인품, 경력 등에서 기쿠치 신사 관계자 총의를 거쳐 추천되었습니다. 노령이었지만 반코는 젊은 시절부터 단련한 자신의 다리로 신사의 험한 산길을 다녔다고 합니다.

 1914년 1월, 반코는 교육자로서 그리고 신관으로서 기쿠치를 위해 힘쓴 82년 간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顕彰碑


시부에 반코(渋江晩香) 송덕비

菊池神社

기쿠치 신사(菊池神社)

문의

기쿠치시청 교육위원회 평생학습과 사회교육계
전화번호:0968-25-7232이 기사에 관한 문의


앞 페이지로 돌아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