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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에 시요(渋江 紫陽, 1719-1792)
시부에 시요(渋江 紫陽, 1719-1792)
시부에 시요(渋江紫陽)는 1719년, 와이후(隈府)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을 기미토요(公豊)라고 했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해, 14세 때 미즈타리 하쿠센(水足博泉), 후에는 야마가의 가가미 가쿠단(加々美鶴灘)에게 사사했으며 친구인 승려 겐미쓰(玄密)과 함께 야마가까지 다녔습니다. 당시는 무예가 한창으로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은 게으르게 보이기 쉽상이어서 남이 눈치채지 않도록 저녁때 집을 나와, 동이 트기 전에 귀가했다고 합니다.
두 스승의 가르침에는 공통으로 "고가쿠(古学: 에도시대에 일어난 유학의 일파)"와 "기쿠치 일족의 현창(顕彰: 업적을 기리고 세상에 널리 알림)" 이란 기둥이 있었습니다. 시요(紫陽) 자신도 이 2개의 기둥을 전승하며, 이후 기쿠치 문교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시요는 30세 때, 히고번의 "지슈칸(時習館)"보다 6년 빨리 사숙 "슈겐테이(集玄亭)"를 창립하며, 폐쇄하기까지 45년간 300명 이상이 여기서 배웠습니다. 시요가 가르친 "고가쿠(古学)"는 히고번과 방침이 달라 히고번에는 출사하지 않았지만, 번(藩)의 학자들은 때때로 시요를 찾아와, "성북(城北)의 은군자(隠君子)"라고 하며 매우 존경했습니다.
1779년, 61세 때, 시요는 다시 1개의 꿈을 이룹니다. 기쿠치 일족 15대 다케미쓰(武光) 묘비 건설입니다. 지금은 기쿠치시의 상징이라고도 할만큼 유명한 다케미쓰 동상이지만 당시는 오랫동안 무로마치 바쿠후에 저항한 무장이었으므로 번듯한 묘지를 만드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어서, 시요가 나서기까지 황폐한 잡초 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시요는 양자 쇼세키(松石), 제자 소덴지(宗伝次)와 힘을 합쳐, 쇼칸지절(正観寺)에 다케미쓰의 충절을 기리는 무덤을 세웠습니다.
시요는 1792년 74세로 생을 마치지만, 기쿠치 문교의 기초를 세운 공적이 인정되어, 1915년, 종5품(従五位)의 위계가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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