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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이손(木下い村, 1805-1867)

갱신일:2022.10.17

い村文字


   기노시타 이손(木下い村:犀潭:사이탄)은 1805년에 도사키(戸崎)의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향학심이 강하고, 처음에는 호소카와번 시의(侍医: 영주 등의 주치의)였던 구와미쓰 하쿠준(桑満伯順)에게서, 그 후에는 번교(藩校)였던 "지슈칸"(時習館)에서 배웠습니다. 지슈칸은 전국에서도 손꼽는 번교(藩校: 주로 무사를 위한 공립 학교)였는데, 그곳에서도 특히 성적이 우수했던 이손은 22세로 성씨 대도(苗字帯刀)가 허락되어, 기노시타(木下) 성을 자칭했습니다.

 31세로 호소카와 나리모리(細川 斉護)의 반독(伴読:영주 가까이서 책을 읽는 역)으로 뽑혔으며, 이후 산킨코타이(参勤交代) 교대마다 영주를 따라, 에도(江戸)와 히고(肥後)를 왕복했습니다. 35세 때는 영주의 후계인 요시치카(慶前)의 반독(伴読)이 되고, 이후 9년간 교육에 몸담았으나, 1848년 요시치카는 요절합니다. 이손에게 요시치카를 잃은 슬픔은 견딜 수 없었으며, 몸도 마음도 쇠약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듬해 병을 극복한 이손은 45세로 지슈칸(時習館) 훈도(訓導: 교관)에 임명되어, 5년 후에는 군주(君主)의 강의역(講義役)인 지코(侍講)를 겸무했습니다. 그해 구마모토 시내에 사숙을 열자 히고번 안팎에서 인기가 있어, 20년 동안 이손을 흠모한 900명 이상의 문하생이 모였습니다. 기노시타주쿠(木下塾)는 메이지 유신 전후로 각 방면에서 활약한 뛰어난 인재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1863년, 이손을 높이 평가했던 바쿠후(幕府)는 바쿠후의 직할 학교인 에도의 쇼헤이코(昌平黌)에 교수로 초빙했으나, 이손은 아직 영주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다며 이를 거절합니다.

  예의 바르고 성실하며 애정이 깊었던 이손은 1867년에 63세로 사망했습니다.


い村塾跡
<구마모토시에 있는 기노시타주쿠(木下塾)터에 세운 비석.

문의

기쿠치시청 교육위원회 평생학습과 문화진흥계
전화번호:0968-25-7232이 기사에 관한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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