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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타 이즈미(伊牟田 泉, 1817-1892)

갱신일:2017.07.12

이무타 이즈미(伊牟田 泉, 1817-1892)

 

에도 말기부터 메이지 초엽, 기쿠치에는 역대로 시부에 학원(渋江塾)이 사숙(私塾) 교육의 중심을 맡아 왔는데, 시부에 반코(渋江晩香)와 거의 동시대에 시스이 지역에도 수백 명의 학생을 가진 사숙이 있었습니다.

이무타 이즈미(伊牟田 泉)는 기쿠치 군 다지마무라(현재의 시스이마치 다지마)에 있는 다지마 스가와라 신사 신관이었으며, 이곳에 사숙을 열어, 지역의 교육에 힘쓴 인물입니다. 이름을 나오야(直冶) 라고도 했습니다.

이무타는 신도가(神道家)로서 이름을 떨친 인물로, 1839년 23세 때, 영주인 호소카와(細川)를 비롯한 규슈의 모든 다이묘(大名)의 초청을 받아 신도 강연을 하고, 나중에 규슈의 존황양이(尊皇攘夷: 천왕을 받들고 외국인을 배척하던 국수주의적 정치사상) 운동을 견인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무타는 일본 고래의 국학, 한학에 뛰어났으며, 문하생 교육을 매우 열심히 하였기 때문에 평판이 자자해 여러 지방에서 많은 사람이 배우러 왔습니다. 1848년에는 사숙 "기요노야(清乃屋)"를 열고 한학・서도・산술을 가르쳤는데 남겨진 텍스트 내용으로 볼 때, 초등에서 중등에 걸친 교육 과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무타의 평판은 한초(藩庁: 현재의 도청)까지 알려져, 1851년 35세 때 돈 백 필(百疋: 약 백만 원 정도)을 받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숙사(塾舎)를 신축하는데, 건축 재료를 야쓰시로(八代) 성주 나가오카 사도(長岡佐渡)가 공급하며, 이로 인해, 더욱 명성이 높아지고 문하생이 급증하며 5백 명을 넘는 문하생이 주야로 면학에 힘쓰는 등성황이었습니다. 1855년 3월에는 실적이 평가되어 영주로부터 매년 쌀 5섬을 제공받습니다. 기요노야(清乃屋)는 그 뒤, 이무타가 68세이던 1884년까지 많은 문하생을 계속 육성합니다.

1892년 신도(神道) 연구와 문하생 교육에 인생을 바친 이무타는 76세로 그 생애를 마칩니다.

 


 伊牟田泉


<이무타 이즈미(伊牟田 泉)


伊牟田塾碑
<다지마(田島) 스가와라 신사(菅原神社) 옆에 세워진 이무타 가(伊牟田家)의 비(碑)

 

문의

기쿠치시청 교육위원회 평생학습과 사회교육계
전화번호:0968-25-7232이 기사에 관한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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