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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바이리(木下 梅里, 1823-1897)
기노시타 바이리(木下 梅里, 1823-1897)
기노시타 바이리(木下梅里)는 1823년, 기노시타 이손 木下い村 의 18살 연하 동생으로 이마무라(今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는 시부에 돈단(渋江涒灘)에게서 후에는 지슈칸(時習館) 교수 곤도 단센(近藤淡泉)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지만, 그 이상으로 형이었던 이손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옛날부터 학문을 뜻하는 사람은 먼 고향을 떠나 천 리 길도 책장(笈)을 짊어지고 스승을 찾았다. 그래도 쉽게 찾기 어려운데, 나는 스승으로서 육친의 형이 있다. 이렇게 행복한 일이 있는가"라며 전적인 신뢰와 경의를 형에게 바치고 있습니다.
바이리의 인품에 대해, 이손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으며, 말주변은 없지만 소박하고 정이 두텁다"라고 적었습니다. 실제로 24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자, 포상을 받을 정도의 모범생임에도 번교인 지슈칸(時習館) 출석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열심히 아버지의 병간호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를 기뻐해 바이리에게 사숙을 열 장소를 제공했으므로 "고코쇼자"(古耕精舎, 이마무라주쿠:今村塾)라는 사숙을 엽니다. 이후 22년에 걸쳐 바이리는 여기에서 한학・화학(和学)을 가르쳤는데 문하생 지도가 매우 극진해, 목에서 토혈해도 강의를 계속할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5세 때 지슈칸 훈도(訓導: 교관)에 임명되어, 고코쇼자"(古耕精舎)는 제자 무토 간잔(武藤環山)에게 맡기고 구마모토로 나왔습니다. 그 후 1871년 49세 때, 폐번치현(廃藩置県)을 계기로 일가가 상경해, 중앙 관료를 맡습니다. 바이리는 1897년, 75세로 사망했습니다. 시로야마 공원(城山公園)에 있는 송덕비는 제자들이 그 덕을 기리며 세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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