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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치 성터와 기쿠치 일족과의 관계

기쿠치 성(鞠智城)터 개요
기쿠치 성터는 백촌강(白村江: 지금의 금강 하구) 전투(663년)에서 승리한,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했을 때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축조된 고대 산성의 하나입니다. 기쿠치 성터의 최신 조사 성과를 정리한 총괄 보고서가 간행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기쿠치성은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후반까지 존속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시기가 이전 견해보다 새로워졌으며, 말기의 역할은 애초의 것에서 바뀌어, 쌀을 저장하는 창고 역할이 중심이었습니다.
기쿠치 씨(菊池氏) 기원기쿠치 씨 기원에 관해, 과거에는 11세기 초 다자이노 곤노소치(大宰権帥)로서 부임해, 1019년 여진족(刀伊: 東夷) 침입을 막는 데 전공을 세운 후지와라 홋케(藤原北家) 가문의 다카이에(隆家) 후손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자손이 1070년 무렵, 교토(都)에서 히고에 들어와 기쿠치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최근 연구에서는 노리타카(則隆), 마사타카(政隆)는 "히고국인(肥後国人)"으로 기록된 점에서, 히고 무사단(武士団)이 기쿠치 씨 시조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구체적으로 규슈의 중심인 다자이후(大宰府) 관인(官人)으로 근무하던 히고기쿠치(肥後菊池)의 관청 장관(長官)인 군시(郡司)나 군단장(軍団長) 일족이 기쿠치 씨라고 추정됩니다.
기쿠치 성(鞠智城)터와 기쿠치 일족고대 산성인 기쿠치성은 율령 체제 조직인 다자이후(大宰府) 관리하에 있었습니다. 기쿠치성의 말기는 쌀을 보관하는 창고 기능이 대부분으로, 기쿠치성과 기쿠치군의 관청 등은 당시 기쿠치군 내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 관계는 아주 밀접했습니다. 또한, 기쿠치 성터의 마지막 시기가 이전보다 약 100년 길어졌고, 기쿠치 일족 발생 시기와 기쿠치 성터 종말과 시간 차이가 짧아졌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쿠치성, 기쿠치군에 있던 관청, 기쿠치 씨(菊池氏), 3자의 상호 관계는 밀접한 것으로, 기쿠치 씨 기원을 기쿠치성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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