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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상세

기쿠치 일족(菊池一族)이란

갱신일:2017.05.18


 並び鷹の羽


매의 깃 문양(並び鷹の羽紋)
 

기쿠치 일족은, 헤이안 시대 후반부터 전국시대 무렵(1070년~1532년)까지 약 450년간, 기쿠치 지방을 중심으로 활약한 무사 일족입니다.

전성기에는 규슈 일대에 영향력을 미칠 정도로 세력을 가진 기쿠치 일족.

이 코너에서는 기쿠치 일족이 걸어온 과정을 소개합니다.

 

기쿠치 씨의 출신 가문

기쿠치 씨의 조상은 오랫동안 중앙의 유력 귀족인 후지와라(藤原) 씨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이것은, 제17대 다케토모 第17代 武朝(たけとも)가 자신이 근무했던 요시노의 조정에 보낸 편지에 「다자이후 장관 후지와라노 다카이에의 자손 노리타카가 기쿠치 씨의 시작이다」라고 씌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로는, 초대 노리타카 初代則隆(のりたか)는 지방 호족으로, 11 세기 전반 후지와라노 다카이에를 섬긴 무인이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자세한 점은「기쿠치 일족 출신 가문 참조 : 菊池一族の出自

1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초대 노리타카(則隆)~2대 쓰네타카(経隆)의 무렵 <延久2년(1070년)~ >

당시의 기쿠치는 다자이후(大宰府) 덴만구 령(天満宮領)  아카보시소(赤星荘)라는 다자이후가 소유한 장원(荘園)이었습니다. 이곳 장원의 장관(荘官: 현지 관리)으로 후지와라노 노리타카 藤原則隆(ふじわらののりたか)가 기쿠치에 부임해, 후카가와(深川)에 저택을 짓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18 외성의 하나인 기쿠노조(菊之城) 성에 해당하는데, 성이라고 해도 부임 당시는 전투를 상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지를 다스리는 것과 물류의 편리성을 중요시했으므로, 기쿠치가와 강 부근에 실질적인 「저택」을 지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녀인 마사타카(政隆)도 시치조마치 스나다(砂田)의 사이고(西郷) 마을에 마스나가 성(増永城: 사이고 성(西郷城))을 짓는데 이것도 기쿠노조 성 같은 저택이었습니다.

이 저택을 본거지로 히고국(肥後国)에 영지를 넓혀 갑니다.

 

菊之城跡


현재의 기쿠노조(菊之城) 성 터(시 지정 문화재)

 

3대 쓰네요리(経頼)~5대 쓰네나오(経直)의 무렵(12세기 초두)

3대 쓰네요리 3代経頼(つねより)는 히고의 영지를 굳히면서, 지쿠호(筑豊) 지방에 진출해 광대한 영지를 획득했습니다. 그 영지를 도바 상황(鳥羽上皇: 시라카와 상황의 손자)에게 기부함으로, 조정과의 관계를 강하게 해 갑니다. 그 영향인지, 자녀인 4대 쓰네무네 4代経宗(つねむね)는 도바원 상황의 처소를 지키는 곳(도바 상황의 어소를 경호한 무사의 힐소. 뜻이 바뀌어 도바 상황을 섬기는 무사를 가리킴)으로 출사하며, 5대 쓰네나오 5代経直(つねなお)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출사합니다.

 

2 겐페이갓센(源平合戦) 전투에서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6대 다카나오(隆直)~9대 다카야스(隆泰)의 무렵(12세기 중엽)

기쿠치 씨에게는 불우한 시대입니다.

당시 헤이케(平家) 가문의 기세는 멈출 줄 모르고, 규슈까지도 지배하려고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대항하기 위해, 6대 다카나오는 근린 호족과 결속, 내란을 일으킵니다. 이때, 다카나오 6代隆直(たかなお)는 주위 호족들로부터 「히고 곤노카미(肥後権守)」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기쿠치 일족이 실질적인 히고의 구니시(国司:Top)로 그 외의 세력들로부터도 정식으로 인정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대기근의 영향도 있어 헤이케(平家) 가문에 항복하며, 이후는 헤이케 측에 서서 싸우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헤이케 가문 몰락 후에는, 가마쿠라(鎌倉) 바쿠후에 많은 영지를 빼앗겨 푸대접을 받게 됩니다.

한편, 기쿠치 씨 하면 매의 깃 문양이 유명한데, 이것은 6대 다카나오 때 바뀐 것으로, 이전에는 히아시몬(日足紋) 문양을 사용했습니다.

 

日足紋から鷹の羽紋へ

 

히아시몬(日足紋) 문양에서 매의 깃 문양으로

10대 다케후사(武房)의 무렵(13세기 중엽)

이 상황을 만회하려고 활약한 것이, 10대 다케후사10代武房(たけふさ)입니다.

유명한 몽골 내습 두루마리 그림(蒙古襲来絵詞)에 2회나 나올 정도로 대활약했으며, 그림의 주인공・다케자키 스에나가(竹崎季長)를 향해 「멋지다」 「상쾌하게 보인다」 고 했습니다.


 

 

蒙古襲来絵詞마쓰모토 사이(몽고 내습 두루마리 그림)  오리모토 일본 고전 그림 두루마리관(귀중본)에서

 

그러나 그 활약에 대한 보상은 투구와 갑옷 일식. 은상의 적음에, 또다시 바쿠후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3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12대 다케토키(武時), 13대 다케시게(武重)의 무렵(14세기 초엽)

반 바쿠후 입장에서, 진제이단다이(鎮西探題: 규슈에서 바쿠후의 본거지)를 습격하려던 12대 다케토키 12代武時(たけとき)지만, 공모하던 소니(小弐) 씨와 오토모(大友) 씨에게 배신당합니다. 하지만 그사실을 알고, 자녀들을 기쿠치로 돌려보낸(소데가우라의 이별) 후, 가마쿠라 바쿠후의 진제이단다이를 공격합니다. 결과, 다케토키는 전사하지만, 바쿠후가 무너진 뒤, 「누구보다 충의를 다한 것은 기쿠치 다케토키」라고 인정되어 자녀인 13대 다케시게 13代武重(たけしげ) 는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으로부터 정식으로 히고 태수(肥後守: 히고의 수장)로 임명됩니다.

또한, 다케시게는 일본에서 처음이라는 혈판 서약문 「기쿠치 가헌(菊池家憲)」을 제정했는데, 그로부터 500년 후, 메이지 천황이 「고카조의 서약문(五箇条の御誓文)」을 제정할 때, 참고했다고 합니다.


 

15대 다케미쓰(武光)의 무렵(14세기 중엽)

15대 다케미쓰 15代武光(たけみつ)는,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의 황태자・가네나가 친왕(懐良親王)을 세이세이쇼군으로 기쿠치에 맞이해 남조 측 중심으로 규슈를 평정하는 큰 세력이 됩니다.

쇼칸지 正観寺 절, 기쿠치 5산(菊池五山)등의 절은 다케미쓰에 의해 정해졌다고 하며, 지금도 기쿠치시의 문화재로서 소중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기쿠치 마쓰바야시 노: 菊池の松囃子」도,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옵니다.

菊池の松囃子기쿠치의 마쓰바야시 노(松囃子能: 국가 지정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

16대 다케마사(武政), 17대 다케토모(武朝)의 무렵(14세기 말~15세기 초엽)

16대 다케마사 16代武政(たけまさ) 아래, 일족의 본거지는 후카가와의 기쿠노조 성에서 와이후의 모리야마성(현재의 기쿠치 신사)으로 옮깁니다.

17대 다케토모 17代武朝(たけとも)는, 가네나가 친왕의 조카인 료세이 친왕(良成親王)과 함께, 규슈단다이(九州探題:규슈에서의 북조 측 수장) 이마가와 료슌(今川了俊)을 상대로 미즈시마(水島) 전투, 다쿠마바라(詫磨原) 전투를 승리로 이어가지만, 최종적으로는 이마가와 료슌에게 본성(모리야마 성)을 빼앗기고 남조(南朝)가 몰락하는 형태로 남북조 통합이 이루어집니다.

 

菊池神社옛 모리야마(守山) 성 터에 세운 기쿠치 신사(菊池神社)

4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20대 다메쿠니(為邦). 21대 시게토모(重朝)의 무렵(15세기 후반)

남북조 통합 후, 기쿠치 일족의 세력은 점차 쇠약해져 가지만, 문교 분야에서는 중앙에도 들릴 정도로 큰 발전을 보였습니다.

20대 다메쿠니 20代為邦(ためくに)는, 가신에게 학문을 장려하고, 유학을 널리 알렸으며, 지금의 시치조 지구에 헤키간지(碧巌寺) 절을 건립했습니다.

또한, 21대 시게토모 21代重朝(しげとも)는, 공자당(孔子堂)을 건립하는 것 외에도, 자신과 가신의 집에서 1일에 1만구를 읽은 연가(連歌) 회(기쿠치 만구, 菊池万句)를 개최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현재 문교 기쿠치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菊池万句


기쿠치 만구(菊池万句: 시 지정 문화재)
22대 요시유키(能運) 이후(16세기~)

제22대 요시유키 第22代能運(よしゆき)이후, 기쿠치 씨는 24대(26대)로 그 막을 내리지만, 그 후예는 전국 각지에 퍼져, 여러 지역에 뿌리 내렸습니다.。

현재, 기쿠치시는 기쿠치 일족을 인연으로 미야자키현 니시메라무라(西米良村)와 자매 도시, 이와테현 도노시(遠野市), 가고시마현 다쓰고초(龍郷町)와 우호 도시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450년 간의 기쿠치 씨 역사를 설명했는 데, 지금도 옛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와이후(隈府) 주변의 지명(字와 小字)은, 기쿠치 본성 축조, 마을 만들기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 이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기쿠치 일족을 모신 菊池神社 기쿠치 신사를 비롯해 기쿠치 일족과 관련된 사적이나 문화재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장군목 将軍木, 기쿠치 5산(菊池五山), 18 외성(十八外城)・・・.

다음에는 부디 기쿠치에서, 지금도 남아있는 역사의 향기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散策マップ




 

 


문의

기쿠치시청 교육위원회 평생학습과 사회교육계
전화번호:0968-25-7232이 기사에 관한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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